인테리어 후 폐기물 처리, '내가 무슨 부귀영화 보자고' 싶었던 그날 밤
1. 새벽 2시의 귀가와 혼자 감당해야 했던 무게
새벽 2시가 다 돼서야 집에 들어왔을 때, 진짜 내가 뭐 하러 이 고생을 샀나 싶어 허탈함에 눈물이 다 나더라고요. 남편은 집에서 애들 보느라 현장 근처에도 못 왔고, 오롯이 나 혼자 그 거대한 폐기물 산더미 속에서 뒹굴어야 했습니다.
온종일 먼지 뒤집어쓰고 쓰레기를 치워대느라 온몸이 으스러지게 아팠습니다. 집에 들어와도 반겨주는 사람 하나 없이 캄캄한 현장뿐이라 서글픔이 밀려왔죠. 집 고치는 일은 당연히 같이 머리 맞대고 하는 건 줄 알았는데, 막상 닥치니까 모든 짐을 나 혼자 짊어지고 버텨야 했습니다.
공사 판은 생각보다 훨씬 더 거칠고 무서웠습니다. 발 디딜 틈도 없이 널브러진 시멘트 포대랑 날카로운 타일 조각들 사이에서, 찌는 듯한 더위랑 먼지를 마시며 버티는데 진짜 현타가 제대로 왔습니다. 옆에서 누가 가벼운 짐이라도 하나 들어줬으면 덜 서글텼을 텐데, 캄캄한 집에 홀로 남겨진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해서 주저앉고 싶었습니다. 인테리어 공사 잘못하면 사람 잡는다는 말이 그냥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는 걸 온몸으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.
2. 식탁 위 메모 한 장이 녹여낸 서글픈 마음
컴컴한 거실 식탁 위에 조그만한 메모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. 이제 막 11살 된 큰아들이 졸린 눈 비벼가며 삐뚤빼뚤 눌러쓴 글씨였습니다.
"엄마 고생 많았어 얼른 씻고 자"
그 순간 서럽고 지쳐서 터져버릴 것 같던 마음이 아이의 서툰 손글씨 하나에 거짓말처럼 무너져 내렸습니다. 남몰래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한참을 멍하게 서 있었습니다. 그 짧은 글씨 하나가 그날 하루 동안 겪었던 온갖 서러움과 고생을 다 보상해 주는 기분이었습니다. 속 안 썩이고 엄마 먼저 생각해 주는 그 여린 마음 덕분에, 바닥까지 내려앉았던 정신을 간신히 추스르고 숨을 고를 수 있었습니다.
낮에는 일에 치여서 애들 얼굴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나왔는데, 잠든 애들이 엄마 걱정하면서 남겨둔 흔적을 보니까 가슴 한구석이 미어지게 아려왔습니다. 하루 종일 쌓였던 피로랑 억울함이 그 종이 쪼가리 하나에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습니다. 거친 현장 속에서 악으로 버티던 엄마 마음을 알아주는 건 결국 내 새끼들밖에 없구나 싶어서, 뭉클한 감동과 함께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습니다.
3. 결심하게 된 다음 인테리어의 원칙
다음번에 또 집을 고치게 된다면, 진짜 내 손으로 철거 폐기물 치우는 미련한 짓은 절대 두 번 다시 안 할 겁니다. 돈을 좀 더 주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전문 철거랑 폐기물 업체를 불러서 내 몸뚱이부터 챙길 겁니다.
이번에 겪어보니 돈 좀 아껴보겠다고 몸 갈아 넣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뼛속 깊이 깨달았습니다. 몸이 부서져라 고생해 봤자 남는 건 쑤시는 관절이랑 허탈함뿐이었습니다. 앞으로는 절대 이런 무식한 짓 안 하고, 전문가들 손에 맡겨서 내 체력이랑 멘탈부터 지키겠다고 다짐했습니다.
내 손으로 직접 치우면 수십만 원은 굳힐 수 있을 줄 알았는데, 그것보다 병원비랑 한약 값이 더 들 판이었습니다. 돈으로도 못 사는 내 시간과 정신 건강을 통째로 갈아 넣었다는 게 제일 억울하고 후회됐습니다. 집은 번지르르하게 예뻐졌을지 몰라도 그 과정을 겪으면서 날려버린 멘탈을 생각하면 아직도 진저리가 쳐집니다. 다신 이런 무모한 짓 안 하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하며, 앞으로는 무조건 내 몸을 제일 먼저 아끼기로 마음먹었습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