말할 수 없는 비밀 (피아노, 주걸륜, OST, 오래 기억되는 이유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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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화를 보고 나서 "이게 벌써 20년 가까이 된 작품이었어?" 하고 멍해진 적 있으신가요. 저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다시 찾아보다가 2007년작이라는 사실에 그냥 멈칫했습니다. 피아노를 전공할 뻔했던 저에게 이 영화는 그냥 영화가 아니라, 한 번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어떤 감정의 잔상 같은 작품입니다.
피아노 전공자도 놀란 주걸륜의 연주
솔직히 처음엔 "배우가 피아노를 얼마나 잘 친다고"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. 가수 겸 배우인 주걸륜이 직접 연주를 얼마나 소화하겠나 싶었거든요. 그런데 실제로 보고 나서 그 생각은 완전히 뒤집혔습니다.
주걸륜은 이 영화를 위해 수개월간 피아노 집중 훈련을 받았고, 단순히 손 모양만 흉내 낸 게 아니라 실제로 상당 수준의 피아노 테크닉(technique)을 구사합니다. 테크닉이란 악기 연주에서 손가락 움직임, 건반 터치, 페달 활용 등 기술적 숙련도를 통칭하는 말입니다. 제가 피아노를 오래 배웠기 때문에 영화에서 어색하게 편집한 장면인지 아닌지를 어느 정도는 구별할 수 있는데, 이 영화는 그 경계를 꽤 잘 지켜냈습니다.
특히 영화 후반부의 즉흥 연주 배틀 장면은 아고긱(agogic) 처리까지 자연스럽습니다. 아고긱이란 악보에 지시된 빠르기를 기계적으로 따르지 않고 감정에 따라 미묘하게 빠르기를 조절하는 표현 기법을 말합니다. 단순히 빠르게 치는 게 아니라 감정의 흐름이 느껴졌고,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어릴 때 피아노 학원에서 어떤 오빠가 어려운 곡을 치던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. 그때 처음으로 "남자가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 저렇게 멋있을 수 있구나"라고 생각했거든요. 그 기억이 이 영화 위에 겹쳐지면서 더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.
주걸륜이라는 배우, 그리고 이 영화의 구조
말할 수 없는 비밀은 주걸륜이 직접 감독, 각본, 주연, OST 작곡까지 맡은 작품입니다. 대만 영화사에서도 이례적인 멀티 크리에이터형 제작 방식이었고, 개봉 당시 대만 박스오피스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습니다. 대만 문화부 통계에 따르면 이 영화는 개봉 당해 자국 영화 흥행 상위권에 올랐으며, 이후 한국과 일본에서도 꾸준히 재개봉 요청이 이어졌습니다.(출처: 대만 문화부)
영화의 서사 구조를 보면 타임 루프(time loop) 모티프를 사용합니다. 타임 루프란 특정 시간대로 반복적으로 회귀하거나 다른 시간대와 연결되는 서사 장치를 뜻합니다. 그런데 이 영화가 독특한 것은 타임 루프를 피아노 연주라는 행위와 연결했다는 점입니다. 악보 안에 비밀이 숨겨져 있고, 그 비밀이 시간을 가로질러 두 사람을 연결한다는 설정은 저도 처음 접했을 때 꽤 신선했습니다.
여주인공 계륜미 역을 맡은 구혜여는 단순히 예쁜 외모만이 아니라 피아노 앞에 앉은 장면에서의 자세와 분위기가 정말 자연스러웠습니다.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"기대 이상"이라고 느낀 이유 중 하나가 배우들이 악기 앞에서 실제 연주자처럼 보인다는 점이었는데, 이건 연출 기술만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부분입니다.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음악을 중심에 둔 선택이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.
OST를 직접 쳐보고 싶다면 알아야 할 것들
이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가장 많이 검색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OST 악보입니다. 저도 몇 년째 "시간 나면 꼭 쳐봐야지"를 반복하고 있는데, 현실적으로 시간이 허락되질 않아서 매번 미루게 됩니다. 그런데 막상 악보를 찾아보니 난이도가 꽤 있습니다.
대표 수록곡인 Secret(비밀)과 Rush E 스타일의 즉흥 배틀 연주는 난이도 분류상 그레이드(Grade) 7~8 수준입니다. 그레이드란 영국 왕립음악학교(ABRSM)가 제정한 피아노 실력 등급 체계로, Grade 8이 최고 수준이며 전문 연주자 입문 직전 단계에 해당합니다.(출처: ABRSM 영국왕립음악학교) 중급 피아노 학습자라면 테마 멜로디 정도는 충분히 도전할 수 있지만, 영화 속 전체 연주를 재현하려면 상당한 준비가 필요합니다.
처음 도전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순서를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.
- 영화 속 테마 멜로디(주선율)부터 단선율로 익히는 것이 시작점입니다. 양손 코드보다 오른손 멜로디만 먼저 잡으세요.
- 리타르단도(ritardando)와 루바토(rubato) 등 감정 표현 기법을 익히는 단계로 넘어갑니다. 리타르단도란 점점 느려지는 속도 변화를, 루바토란 박자를 자유롭게 늘이거나 줄이는 감정적 연주법을 뜻합니다.
- 좌우 손 코드 반주와 멜로디를 합쳐 전체 구조를 완성하는 순서로 진행하면 중도 포기를 줄일 수 있습니다.
제 경험상 이런 순서를 지키지 않고 처음부터 전체를 통째로 치려다가 손이 꼬이고 의욕이 꺾이는 경우가 많습니다. 피아노는 작게 나눠서 쌓아가는 과정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.
이 영화가 유독 오래 기억되는 이유
제가 생각하기에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시간이 지나도 회자되는 이유는 단순히 주걸륜 때문만은 아닙니다. 이 영화는 피아노라는 악기의 프레이징(phrasing)을 서사 자체로 만들었습니다. 프레이징이란 음악에서 악구 단위의 흐름, 즉 문장처럼 이어지고 끊기는 음의 단락을 말합니다. 이야기 자체가 하나의 악보처럼 구성되어 있고, 결말이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개방형 구조도 그 안에 있습니다.
저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"내가 남자로 태어났어도 피아노를 열심히 쳤을 것 같다"는 생각을 합니다. 음악에 성별이 있을 이유는 없는데, 어릴 때 피아노 학원에서 남자 아이들은 손가락이 짧다거나 지루해한다는 편견이 있었습니다. 그런 시선을 완전히 뒤집는 게 이 영화이기도 합니다.
다이나믹(dynamic), 즉 소리의 세기 변화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장면들이 영화 내내 등장하는데, 그게 단순히 연주 기술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 상태를 보여주는 장치로 기능합니다. 이 영화가 음악 영화의 문법을 제대로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.
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거나 지금 배우고 있는 분이라면,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단순한 로맨스 영화 그 이상입니다. 영화를 보고 나서 피아노 앞에 앉고 싶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. OST 악보는 난이도별로 여러 편곡 버전이 유통되고 있으니, 본인 수준에 맞는 버전부터 시작해보시길 권합니다. 저도 올해 안에는 꼭 한 번 제대로 앉아볼 생각입니다. 매번 미뤄왔지만, 이 글을 쓰면서 조금 더 마음이 기울었습니다.
--- 참고: https://blog.naver.com/ooo_ooo1122/224164043898- 공유 링크 만들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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